버스 창밖으로 저녁 햇살이 길게 늘어진다.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어폰을 귀에 꽂고 무심코 플레이리스트를 넘기다 낯익은 기타 전주에 손이 멈췄다. 사랑과 평화의 ‘어머님의 자장가’.
낡은 LP에서나 흘러나올 법한 이 곡은 묘하게도 그날따라 유난히 또렷하게 마음을 두드렸다. 블루지한 기타 전주, 투박하지만 정직한 보컬의 묵직한 선율이 마음속 어느 연약한 부분을 살포시 건드린다. 문득, 어머니가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부모님이 함께 떠올랐다.
어릴 적, 난 자장가를 거의 듣지 못하고 자랐다. 어머니는 늘 일에 지쳐 계셨고 아버지는 밤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오셨다. 그저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있던 그 짧은 시간의 따뜻한 손길이 나의 자장가였다. 그 손길 속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한 수고로움과 사랑이 배어 있었다.
사랑과 평화의 노래는 그런 감정을 되짚게 한다. 단순한 멜로디와 반복되는 가사지만 마음속 깊은 곳의 기억을 조용히 끄집어낸다. 어릴 적 부모님의 얼굴, 손길, 그리고 잠결에 들리던 라디오의 선율까지.
노래를 들으며 나는 생각한다. 어버이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매년 그렇듯 문자 하나로 축하 인사를 대신하고 백화점 상품권으로 감사를 전하곤 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노래 한 곡이 이토록 마음을 울리는데, 직접 사랑을 전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올해 어버이날엔 직접 카네이션을 사서 부모님을 찾아갈 생각이다. 이제는 내가 부모님의 하루 끝에 잔잔한 위로가 되어드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선물 하나 보내드리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해 왔다. 올해 어버이날엔 직접 카네이션을 사서 부모님을 찾아 뵐것이다.
‘어머님의 자장가’는 단지 어머니만을 위한 노래는 아니다. 부모라는 존재가 주는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에 대한 노래,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나 큰 위로를 받고 자랐는지를 상기시켜 주는 곡이다. 그 위로를 이제는 내가 돌려드릴 차례다.
창밖엔 여전히 저녁 햇살이 머물고 있다. 노래가 끝나고도 멜로디는 머릿속에서 반복된다.
'음악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힙합은 숨기지 않을까? #02] 래퍼는 왜 자기 얘기만 할까? | 힙합과 자전적 가사의 힘 (0) | 2025.04.24 |
---|---|
[왜 힙합은 숨기지 않을까? #01] 요즘 힙합 가사는 왜 이렇게 직설적일까? (1) | 2025.04.24 |
Faime - Follow Me | 비 오는 날, 감성 깊이 스며드는 음악 (1) | 2025.04.22 |
노팅힐 ‘She’는 왜 그 장면에 나왔을까?|OST가 감정을 완성하는 순간 (1) | 2025.04.21 |
음악이 장면을 완성하는 순간 |죠스와 존 윌리엄스의 두 음표 (0) | 2025.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