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나온 지 오래됐는데도, 어떤 멜로디는 여전히 귀에 맴돈다. 줄거리도 흐릿해졌고, 대사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음악만큼은 한 번 들으면 다시 돌아온다.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장면이 아니라 감정을 기억하고, 그 감정을 가장 강하게 되살려주는 건 언제나 음악이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영화 음악은 대부분 단순한 구조를 가진 멜로디다. 하지만 그 단순함 안에 정서적인 깊이가 스며 있다.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의 Comptine d’un autre été는 멜로디 몇 줄로 주인공의 세계를 그려낸다. 음악은 아멜리의 눈빛보다 먼저 그녀의 내면을 설명한다. 도시의 풍경보다 그녀의 감정이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음악이 관객 안에 같은 결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영화는 흐릿해져도,
음악은 마음속에서 계속 재생된다.
'러브레터'의 OST도 마찬가지다. 하얀 눈이 쌓인 겨울 풍경 속에서 흐르던 A Winter Story는 그 장면의 감정과 함께 관객의 기억에 그대로 새겨진다. 사랑, 그리움, 그리고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 그 모든 것이 멜로디 한 줄에 실려 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듣게 되면, 그 장면보다 먼저 그때의 감정이 떠오른다. 우리는 그 음악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다시 만나는 것이다.
영화보다 음악이 더 오래 남는 이유는 재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상은 다시 보기 전까지 기억에 의존하지만, 음악은 언제든지 다시 틀 수 있고, 매번 같은 감정을 꺼내준다. 듣는다는 행위는 곧 느낀다는 행위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좋아했던 영화를 굳이 다시 보지 않아도, 그 OST만으로도 충분히 그 여운을 다시 누릴 수 있다.
기억에 남는 음악은 단순히 '좋은 음악'이 아니다. 그것은 내 안의 어딘가에 닿았던 음악이다. 그 순간에 들었기에, 그 장면과 감정이 함께 저장된 것이다. 음악은 그렇게 개인의 기억이 되고, 시간이 지나도 다시 재생되는 감정의 트리거가 된다.
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살아남는다.
우리는 그 음악을 듣는 순간, 다시 그 장면으로, 그 감정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바로, 음악이 남긴 흔적이자, 영화보다 더 오래 기억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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