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 우연히 들은 멜로디가 내 하루를 바꿨다|전인권 ‘사노라면’

하루가 시작도 하기 전에 무너질 것 같던 날이 있다. 이유도 없이 모든 게 귀찮고 숨만 쉬어도 지치는 그런 아침. 그날 아침도 그랬다. 부시시하게 눈을 떠서 억지로 옷을 입고 숨 가쁘게 버스를 탔다. 사람들의 표정은 무표정했고 창밖 풍경은 뿌옇고 무미건조했다. 그런데 버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그 한 줄.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순간, 멈춰버렸다.내 하루가. 어쩌면 난 너무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전까지는 누가 나한테 말을 걸기라도 했다면 툭, 하고 눈물이 쏟아졌을 것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별일 없이 사는 것조차 버거워서 괜히 나만 뒤처진 것 같고 무언가를 해도 늘 제자리인 느낌. 그때 들려온 전인권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큼 거칠고 불안정한데 그래서 더 진심처럼 들렸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진심 같고 더 믿음직한 노래. 전인권의사노라면은 그저 희망을 노래하는 게 아니다. 그는 말한다. 살다 보면 아프고 지치고 넘어질 수도 있다고….. 하지만,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해가 뜬다고.

 

너무 뻔한 가사의 이 곡이 유난히도 다르게 들렸던 건 내가 그 뻔한 말조차 믿지 못할 만큼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목소리가, 그 음절이, 그 기타 소리가 내 마음 어딘가를 툭 건드린 거다. “야, 괜찮아. 지금 이 순간도 결국 지나가.”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 멜로디 하나에 숨이 트였다. 버스는 언제나처럼 정해진 길을 달리고 있었지만 내 안에서는 무언가가 살짝 방향을 틀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밝은 날이 올 수도 있겠다, 그 가능성 하나만으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잠깐 눈을 감고 창밖 햇살이 스며드는 걸 느꼈다. 지금까지 나는 매일을 견디느라 봄이 와 있는 줄도 몰랐던 거다.

 

 

우리가 우연히 만나는 위로. 꼭 누가 손을 잡아주지 않아도 꼭 누가 내 등을 토닥이지 않아도 이따금 음악은 전부를 대신해준다. 라디오에서, 카페에서 혹은 버스 안 스피커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그 한 곡이 그날 하루를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노래는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살고자 하는 마음을 다시 불러오는지도 모른다.

 

“사노라면.”

 

참 묘한 말이다. 단순히 살아간다는 뜻이 아니라 살다 보면 괜찮아질 거야 라는 따뜻한 믿음이 담겨 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지칠 때마다 이 노래를 꺼내 듣는다. 여전히 상황은 바뀌지 않았고 여전히 힘든 날은 계속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제는 그 하루들이 조금은 덜 버겁다왜냐면 사노라면, 언젠가는, 정말로 괜찮아질 거라는 걸 조금은 믿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