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이 잔잔하다. 하늘은 맑고, 사람들은 평온하게 해변을 즐긴다. 아무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의 다리 아래 ‘그것’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둥… 둥… 둥둥둥둥…두 음. 딱 두 개의 음만으로 우리는 무언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안다. 무서운 건 상어가 아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는 상어 영화의 전설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상어는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무서웠을까? 그 공포를 만든 주인공은 존 윌리엄스의 단순한 테마였다 ."두 음으로 시작되는 단순한 리듬은 육식동물이 조용히 접근하는 느낌을 완벽히 담아낸다." 눈에 보이지 않아 더 무서운 존재. 그 존재의 그림자를 존 윌리엄스는 음표로 만들어냈다. 음악이 없었다면 그저 물속을 헤엄치는 한 장면에 불과했을 것이다.
죠스의 메인 테마는 공포를 직접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예고한다. ‘곧 뭔가 벌어질 거야.’ 그 불안은, 장면이 시작되기도 전에 시작된다. 이 음악은 우리 안의 상상을 자극하고 눈앞의 장면보다 훨씬 더 깊은 공포를 만들어낸다. 음악이 장면보다 먼저 우리의 감각을 점령하는 순간.그게 바로 죠스가 시대를 초월한 공포가 된 이유다.
이 영화가 대단한 이유는 음악이 '배경'이 아니라 '배역'이라는 점이다. 존 윌리엄스의 테마는 상어의 등장과 퇴장을 대신한다. 카메라가 상어를 따라가지 않아도 음악이 대신한다. 음악이 들리면, 상어가 있다. 음악이 사라지면, 상어도 사라진다. 그 관계를 기억하게 된 순간, 관객은 더 이상 화면에 집중하지 않는다. 귀로 상황을 듣고 상상으로 장면을 완성해버린다. 이건 영화에서 음악이 가진 힘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죠스 이후, 우리는 많은 장르에서 음악이 감정을 유도하는 것을 봐왔다. 액션에서는 박동을, 멜로에서는 감정을, 스릴러에서는 긴장을 음악이 이끌었다. 하지만 죠스처럼 “음악 그 자체가 이야기”인 영화는 흔치 않다. 장면이 아니라 음악이 먼저 우리를 조종하고, 음악이 없으면 장면의 힘도 휘발되어버리는 구조. 이건 단순한 삽입곡 이상의 존재감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누구나 자기만의 ‘죠스 테마’를 만난다. 장면보다 먼저 감정을 알려주는 그 음악.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할 때 슬쩍 등장해 우리를 울컥하게 만드는 멜로디. 음악은 장면을 보완하지 않는다. 그 장면을 '완성'한다. 존 윌리엄스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만든 건 상어가 아니라, 그 상어의 숨결이었다."
음악은 들리는 것이지만 어쩌면 가장 강력한 시각적 도구일지도 모른다. 죠스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무서울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무형의 공포를 단 두 개의 음으로 완성시킨 음악이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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