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은 끝났지만, 음악은 남았다 #07] 사운드트랙이 아니라 감정트랙이다

우리는 흔히 영화 속 배경음악을 사운드트랙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소리의 트랙’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이 사운드트랙은 소리 이상의 기능을 한다. 그것은 영화의 감정선을 따라 흐르고,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고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단순한 소리가 아닌, 감정의 트랙. 그래서 어떤 음악은 단순히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는 나침반이 된다.

'라라랜드'의 음악은 그 대표적인 예다. 처음엔 화려한 재즈 넘버로 시작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멜로디는 점점 더 잔잔해지고 슬퍼진다. City of Stars와 Epilogue는 이 영화의 감정 구조를 그대로 따라간다. 사랑이 시작될 때의 설렘, 엇갈림의 안타까움, 마지막 회상 장면에서의 눈물까지. 대사보다 먼저 음악이 감정의 전환을 암시하고, 그것이 관객에게 몰입의 리듬을 만든다.

음악은
스토리를 따라가지 않는다.
감정을 이끈다.


 

'문라이트' 역시 음악이 인물의 삶을 설명하는 도구가 된다. 세 시기를 다루는 이 영화에서 Little's Theme, Chiron’s Theme, Black's Theme은 단지 이름을 붙여놓은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의 정체성과 내면을 가장 진실하게 담아낸다. 말하지 못하는 소년, 갈등 속에서 자라나는 청년, 그리고 어른이 되어 마주하는 과거. 그 각각의 순간에 흐르는 음악은 화면 위의 침묵을 대신해 관객에게 감정의 지도를 그려준다.

 


영화 속 음악은 종종 눈에 띄지 않는다. 그것이 좋은 음악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음악이 스토리를 직접적으로 끌고 갈 때, 그것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의 서사’가 된다. 음악은 이야기의 기승전결보다 먼저 기쁨과 슬픔, 갈등과 해소의 리듬을 짜고, 관객은 그 흐름 속에서 인물과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대사가 없는 순간에도 감정이 끊기지 않는 건, 그 아래에서 음악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어떤 영화의 줄거리는 잘 기억나지 않아도, 그 음악만은 감정과 함께 기억하게 된다. 그것은 스토리가 아니라 감정을 따라간 결과다. 음악은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때 무엇을 느꼈는가’를 환기시킨다. 그것이 영화 음악이 가진 가장 중요한 역할이고, 우리가 사운드트랙을 감정트랙이라 불러야 하는 이유다.

그 음악을 다시 들으면, 우리는 줄거리를 복습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반복하게 된다.
장면은 지워져도, 감정은 그대로 남는다.
그리고 그 감정을 다시 꺼내보는 순간, 영화는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