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은 끝났지만, 음악은 남았다 #09] 사랑은 멜로보다 멜로디로 기억된다

사랑 이야기에는 반드시 노래가 있다. 누군가를 처음 바라본 순간, 마지막으로 등을 돌린 순간, 말없이 서로를 마주보던 그 긴 정적 사이에도 음악은 흐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영화는 흐릿해져도, 그때의 멜로디만큼은 마음에 오래 남는다. 사랑은 이야기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감정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정은 언제나 음악을 타고 떠오른다.


'비포 선셋'에서 셀린과 제시가 오랜 시간 끝에 다시 마주하고, 함께 택시를 타고 노을진 파리를 지나며 흘러나오는 노래는 셀린이 직접 부른 A Waltz for a Night이다. 가사와 멜로디 모두가 사랑에 대한 미련과 동시에 현실에 대한 체념을 담고 있다. 대사는 적고, 눈빛은 흔들리지만, 그 음악이 흐르는 순간 관객은 둘의 감정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된다.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는 감각, 그건 말보다 멜로디가 더 진하게 설명한다.

 

사랑은 종종 말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때의 노래, 그때의 분위기로 남는다.

 

'하이 피델리티'에서는 음악이 캐릭터의 감정 그 자체다. 주인공이 지나간 연인들을 떠올릴 때마다 그들의 추억은 곧 플레이리스트가 된다. 그는 사랑을 떠나보내며 음악을 정리하고, 새로 시작하며 음악을 다시 고른다. 사람마다 기억하는 음악이 다르듯, 그 안의 사랑도 모두 다르다. 이 영화는 음악을 통해 감정의 이력서를 써 내려가는 방식으로 사랑을 말한다.

사랑 영화 속 OST는 단지 분위기를 만드는 장치가 아니다.
그건 관객에게 감정의 기억을 심는 도구다.
때로는 한 곡이, 영화 전체보다 더 오래 기억된다.
그 곡이 나올 때 우리는 다시 사랑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간다.

사랑은 대사가 아닌 감정의 진폭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진폭은 언제나 음악이 만들어낸다.
장면은 사라져도, 멜로디는 그 사람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이야기할 때, 음악을 함께 꺼낸다.